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환성은 1924년 12월 경 동지들과 함께 부산인쇄직공조합의 창립 회원이 되어 위원장 김성칠(金七星) 등의 지도를 받아, 조합원 상호의 친목부조 및 부산 인쇄 직공의 대우 개선을 위한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김봉희(金奉喜)·차학순(車學舜) 등 20여 명과 함께 부산인쇄공청년회(釜山印刷工靑年會)를 조직하고, 1925년 12월 13일 도정인쇄직공조합(島町印刷職工組合)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1928년 6월초부터는 사회주의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김환성은 인쇄직공조합을 부흥하고 노동자들을 규합하여 노동운동을 촉진하였다. 그럼으로써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고 노동자로서 자유평등으로 생활을 할 수 있는 신사회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이에 기존의 조합을 부산출판종업원조합(釜山出版從業員組合)이라 바꾸고 자신은 재정부를 맡았다.
1928년 11월 29일 조합의 창립 5주년 기념식 및 조합 혁신 제2차 정기총회를 12월 2일에 개최하려고 집회서를 부산경찰서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부산경찰서에서는 이때가 쇼와(昭和)의 즉위를 기념하는 특별 경계기간[御大典特別警戒期]으로 보안상 집회를 금지시켰다. 그러나 12월 2일 당일 부산 관음사(觀音寺)에서 비밀 집회를 강행하였다. 이로 인해(일명 부산출판 총임원 조합사건) 김환성은 부산경찰서에 검거되어 취조와 신문을 받았고, 1년 3개월 동안 부산지방법원 예심계에서 예심을 받았다. 1929년 11월 14일 예심이 종결되어, 1930년 2월 25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보안법 위반으로 검사로부터 징역 10월을 구형받았다. 그러나 동년 3월 4일에 보석 중에 있다가 다시 부산형무소에 수용되었으며, 3월 10일 동 법원에서 구류 10일의 판결을 확정, 3월 20일에 구류만기로 석방되었다.
석방 후 김환성은 1930년 4월 24일 부산청년동맹 제3회 정기대회가 열릴 때 집행위원에 선임되어 활동하였으며, 4월 29일 부산청년동맹 제4기 제1회 집행위원회에서 선전조직부 부원으로 참여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시대일보(1925. 12. 17)
- 東亞日報(1929. 11. 18, 11. 19)
- 中外日報(1930. 2. 27·3. 22·4. 28·5. 3)
- 수형인명표폐기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