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1908년 경북 경주ㆍ장기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순사주재소 공격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이영성은 정완성(鄭完成)과 함께 정용기(鄭鏞基) 의병장이 이끄는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12월 하순경 정완성 등 수십 명의 의병과 함께 총과 칼을 휴대하고 경북 경주군 강서면(江西面) 두동(斗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08년 1월 3일에는 경북 장기군 읍내에 들어가 순사주재소를 공격하였다. 일본인 순사 모리(森某)를 총살하고, 일본인 순사 코사키(光崎某)의 양 다리 및 왼팔에 부상을 입혔으며, 총 3정과 칼 2자루를 획득하였다. 이때 정완성의 지휘로 순사주재소와 재무서, 우체소 순사의 집 3채를 불태웠다. 같은 날 이영성 등 의병들은 무기를 휴대하고 경주군 강동면(江東面) 양동(良洞)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군자금 100냥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6월 30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 살인 및 방화죄로 교수형을 받고 공소했지만, 같은 해 8월 24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1909년 9월 20일 대심원에서 상고도 기각되어 같은 해 10월 13일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地方裁判所 : 1909. 6. 30)
- 判決文(大邱控訴院 : 1909. 8. 24)
- 判決文(大審院 : 1909. 9. 20)
- 刑事控訴事件簿
- 大韓帝國官報(1909. 10. 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