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5월부터 경북 흥해(興海) 일대에서 이석이의진(李石伊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석이(본명 李錫)는 1906년 3월 경북 영천(永川)에서 정용기(鄭鏞基)가 조직한 산남의진(三南義陳)에 참여하였다. 1907년 9월 초 영일군(迎日郡) 죽장면(竹長面)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대장 정용기가 전사한 뒤 독자적으로 의진을 편성하여 의병장이 되었다. 이석이의진은 1907년 9월 이후부터 1909년 10월 2일 청송군 현동면(縣東面) 도평(道坪)에서 체포될 때까지 청하(淸河)ㆍ영천ㆍ청송(靑松)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과 친일파 처단에 주력하였다.
최성갑은 1908년 5월부터 1909년 10월까지 이석이의진에 참여하여 동료 의병들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흥해군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7월 1일과 10월 30일 흥해군 기계면(杞溪面) 탱동(撑洞)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 청하헌병분견소 소속 헌병 및 보조원 4명으로 편성된 정찰대에 체포되었다.
1910년 4월 18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공소했으나, 같은 해 5월 7일 대구공소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2년 칙령 제23호에 의하여 징역 5년으로 감형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地方裁判所 : 1910. 4. 18)
- 判決文(大邱控訴院 : 1910. 5. 7)
- 刑事事件簿
- 刑事控訴事件簿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9) 제18권 5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