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1910년 경북 영해(寧海)ㆍ영양군(英陽郡) 일대에서 정문칠(鄭文七)ㆍ신대여(申大汝) 의진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이귀전은 1907년 음력 7월 14일부터 의병장 신돌석(申乭石)의 휘하에서 의병 수십 명과 함께 총과 창검을 가지고 경북 영해ㆍ영덕(盈德)ㆍ진보(眞寶)ㆍ영양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07년 음력 7월 15일 영양군 석보면(石保面) 원리동(院里洞), 음력 9월 15일 영해군 오서면(烏西面) 수곡동(水谷洞)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09년 3월 13일 정문칠의진에 참여하여 의병 십수 명과 함께 총과 창검으로 무장하고 같은 해 음력 4월 14일 영해군 서면(西面) 신리동(新里洞)에서, 1910년 음력 10월에는 신대여의진에서 의병 십수 명과 함께 총과 창을 휴대하고 영양군 동면(東面) 대천동(大川洞), 영해군 오서면 보구동(寶丘洞)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1년 2월 10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았다. 1911년 칙령 제23호에 의해 징역 3년 6월, 1914년 칙령 제104호에 의해 징역 3년 4월 19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地方裁判所 : 1911. 2. 10)
- 刑事事件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