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영관은 1927년 12월 재만 독립군단인 참의부(參議府) 제1중대원으로 중국 관헌과 전투를 벌이다 순국하였다.
1924년 초 성립된 참의부는 남만주 압록강 변의 집안현(輯安縣)과 그 주변지역을 근거로 이주한인사회를 대상으로 자치활동을 펼치는 한편,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원래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의 구성원이었던 채찬(蔡燦)·박응백(朴應伯) 등은 1923년 말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방문했다. 그들은 임정의 요인들과 협의한 뒤 통의부의 일부 부대를 분리시켜 임정 직속의 군부대를 설립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남만주로 돌아 온 뒤 통의부 의용군 제1·2·3·5중대와 유격대 및 독립소대를 분리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를 성립시켰다.
이 같이 성립한 참의부는 독립군의 기반이 되는 이주 한인을 위한 자치활동도 실행하였지만, 그보다는 무장투쟁에 더욱 중점을 두었다. 참의부 군사부 지휘관들은 수시로 산하 독립군들을 압록강변이나 국내에 파견하여 무장활동을 전개하도록 하였다.
김영관도 참의부의 이러한 노선에 따라 1927년 12월 압록강변인 집안현 집산(輯山)에 파견되었다가 중국군과 접전을 벌였다. 파견대의 척결 대상은 일본군이었으나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군이 이들을 발견하고 선제공격을 해오자 접전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 전투에서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운 김영관은 약관 24세의 나이로 전사하고 말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28. 1. 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