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치일은 경남 울산군 상부면 반곡리 출신으로 1908년 울산 일대에서 활동하던 김기준의진(金基俊義陣)에 소속되어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순국(殉國)하였다.
김기준은 언양군 상북면 남부리 출신으로 의병 수십 명을 거느리고 활동하고 있었다. 1908년 6월 30일 김기준을 비롯한 의병 13명은 울산군 농소면 오정동에서 임달이(林達伊)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고 있던 중, 울산경찰분서에서 파견된 4명의 변장순사대의 기습 공격을 받고 김기준과 김치일이 체포되었다. 심문 결과 김기준의 지휘 아래 있던 의병들은 울산군 관내에서 11건의 의병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소속된 의병은 김춘길(金春吉)·염덕로(廉德魯)·허익견(許益見)·박춘영(朴春永)·홍치언(洪致彦)·김치일(金致一)·박선일(朴善一)·송돌기(宋乭基)·박선익(朴善益)·이모(李某) 등이었다.
김치일은 1911년 7월 29일 대구공소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동년 9월 12일 대구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朝鮮總督府官報(朝鮮總督府, 1911. 9. 18)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2) 11권 義兵篇ⅳ 389면
- 暴徒 逮捕에 關한 狀況에 대한 件(1908. 7. 1) 暴徒에 關한 編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