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고생호는 1939년 낙양에서 국민당 군대의 포로가 되었으나 조선의용대로 넘겨져 대원이 되었다.
1942년 3월경 일본군(日本軍) 점령 지역인 북경(北京) 일대에 파견되어 동지 획득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선의용대는 중국 관내(關內)에서 활동하던 무장 항일 독립운동단체로 김원봉(金元鳳) 등의 주도 하에 1938년 10월 한구(漢口)에서 조직되었으며, 1942년 봄 일부 대원은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제1지대로 흡수·편입되었고 조선의용대의 주력은 1942년 7월 화북조선독립동맹(華北朝鮮獨立同盟)이 지도하는 조선의용군으로 개편되었다.
해방 후 고생호는 연변(延邊)에서 조선의용군 제5지대 제16연대 부연대장으로 활동하면서 조선인 마을을 습격해오던 삼도만(三道灣)·평강(平崗) 일대의 토비를 토벌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特高月報(1942年 3月分) 제32호 213면
- 독립운동사료(국가보훈처) 중국편 제17권 27~28면
- 중국지역수집사료(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제8권 317면
- 조선의용군의 독립운동(염인호, 2001) 151~152면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2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