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41~42년 전북 익산군(益山郡) 망성면(望城面) 화산리(華山里) 소재 계명학교(啓明學校) 교장으로 일왕을 비난하고 일본군의 전쟁수행을 비판하는 등의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영호는 어린 시절 천주교 집안에서 자랐고, 성장기에는 신학교를 다닌 영향으로 항일민족의식을 품을 수 있었다. 1938년 6월 대구부(大邱府) 남산정(南山町) 대신학교(大神學校)를 졸업하고 천주교 신부가 되었다. 동년 7월 화산리 천주신부로 임명되어 동 교회에서 경영하는 계명학교의 교장을 겸무하였다.
1941년 12월 중순 자신의 집에서 동교 교원 달성충웅(達城忠雄) 등에게 ‘미일 (美日)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일본이 어떻게 될 것인가? 일본은 결국 동서에 끼어 경제전(經濟戰)에서 질 것이다’라고 일본의 패전을 예상하였다. 또 1942년 1월 2일 동교 교정에서 금산정일(金山正一)에게 ‘명치천황(明治天皇)은 이등박문(伊藤博文)에게 부군인 효명천황(孝明天皇)을 살해하도록 하고 즉위하였고, 이등박문 역시 일국의 천황을 살해하고 지위를 얻은 야심가이다’라고 발언하였다.
이러한 발언으로 인하여 김영호는 일경에 체포되어 1943년 6월 22일 전주지방법원과 1943년 8월 1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불경죄 및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全州地方法院:1943. 6. 22)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43. 8.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