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음력 3월 충남 한산(韓山)ㆍ서천(舒川)ㆍ임천(林川) 일대에서 정찬경의진(鄭贊敬義陣)에 참여하여 한산순사주재소(韓山巡査駐在所)를 공격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충남 한산 출신의 정찬경은 1907년 연산(連山)에서 김득수(金得洙)와 함께 창의(倡義)하여 한산ㆍ서천 일대에서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1909년 5월 약 5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서천군 황동리(黃洞里) 일대에서 활동하던 중, 같은 해 7월 일본군 홍산수비대(鴻山守備隊)에 의해 피살, 순국하였다.
이영규는 김정도(金正道)와 함께 1908년 음력 3월 정찬경의진에 참여하여 동료 의병 13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한산ㆍ서천ㆍ임천 등지에서 한산순사주재소를 공격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08년 8월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21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2년여의 옥고를 치른 뒤 1910년 대사령(大赦令)에 의해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公州地方裁判所 : 1908. 9. 21)
- 刑事第一審事件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