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승무는 정의부(正義府) 모연대원으로 1927년 4월부터 북간도 연길현(延吉縣) 일대에서 군자금 모금활동을 벌였다.
정의부는 1924년 11월 24일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광정단(光正團)·의성단(義成團)·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등 8개 독립운동단체가 통합해 성립된 통합군정부였다. 이 단체는 유하현(柳河縣)·관전현(寬甸縣)·통화현(通化縣) 등 남만주지역에 만들어진 이주 한인사회를 대상으로 자치활동을 벌이며 항일무장투쟁을 수행하였다. 따라서 정의부는 이들 광대한 지역을 관할하기 위해 본부 이외에 많은 지역에 체계적인 지방조직을 설치했다. 그리고 이들 지역에 지방조직 이외에 여러 가지 기관을 설치해 이주 한인을 보호하는 한편 조직을 이끌고 항일활동을 펼치기 위한 의무금이나 군자금 등을 모금하였다.
김승무가 적을 둔 모연대도 이 같은 목적의 정의부 지방조직 중 하나였다. 모연대는 정의부 본부와 거리가 떨어져 있는 북간도 지역의 한인들에게서 의무금 및 군자금을 거두어들이기 위해서 조직된 부대였다. 총 3개의 모연대가 있었는데, 제1모연대는 화룡현(和龍縣)에 제2모연대는 연길현(延吉縣)에, 제3모연대는 왕청현(汪淸縣)에 설치되었다.
연길현 이주한인을 대상으로 활동한 김승무의 행적을 볼 때, 그는 제2모연대 소속의 대원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1927년 4월 17일 김승무는 동지 김상배(金相培)와 함께 연길현 용정촌(龍井村) 이희준(李熙駿)이 경영하는 전당포에 진입해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같은 달 19일에는 연길현 상의향(尙義鄕)에 있는 한주관(韓周官)의 집을 방문해 군자금 30원을 모금하였다. 같은 달 23일에는 상의향 같은 동네에 있는 김승준(金承俊)에게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이 같은 활동은 간도지역 일제 경찰에 포착되어 붙잡히고 말았다.
김승무는 일제에 의해 1927년 12월 1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사기·강도·강도미수 등으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함흥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그러나 옥중에서 일제의 가혹한 고문을 받고 병을 얻어 1년 11개월 만에 가출옥되었으나 출소 후 1개월 만에 순국하고 말았다.
정부는 공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假出獄執行濟之件報告(咸興刑務所:1931. 4. 11)
- 淸津地方法院第1審判決抄本(京城地方法院:1927. 12. 16)
- 東亞日報(1928. 1. 31)
- 朝鮮日報(1928. 1.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