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이덕칠은 1933년 2월, 경북 김천에서 결성된 조선공산당 김천그룹재건협의회에 참여하였고, 1935년 김천에서 독서회·야학회를 조직하고 소작쟁의를 주도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조선공산당 김천그룹재건협의회는 조선공산당 김천그룹이 와해되자, 1933년 2월경, 이병일(李秉一)·김종택·김만규(金萬奎)·백낙도(白樂道)·나정운(羅鼎雲) 등이 다시 재결성한 조직이었다. 현직 형무소 간수를 비롯하여 각 관공서 직원, 소사, 급사와 각 계급 각층이 참여한 재건협의회는 매월 1회씩 지도부회를 개최하여 각자의 활동 상황을 보고하고, 운동의 확대 강화책에 관한 연락 협조를 도모하는 한편, 노동자·농민·소시민·청년·소년·학생·여성 등 각층에 ‘오르그(조직)’를 배치하고, 각 책임자의 밑에 독서회·야학회를 조직하여 항일의식을 주입하고, 각종 쟁의를 주도하였다. 또한 서울의 ‘조선적색노동조합 준비회’ 등과 연대하여 독립운동을 하려다가 1935년 5월 13일 이래 경북 김천경찰서에 발각되어 동지들이 검거되기 시작하였다. 체포된 이덕칠은 12월 17일 동지 60여 명과 함께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고, 12월 26일 대구지방법원 예심에 회부되었다. 이덕칠은 예심 중, 1936년 2월 초순부터 급성폐병으로 형무소에서 신음하다가 15일 보석 출감하여 3월 23일 김천읍 남산정 자택에서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朝鮮中央日報(1936. 3. 30)
- 決定文(大邱地方法院 : 1936. 4. 13)
- 東亞日報(1935. 12. 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