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9년 4월 충남 임천군(林川郡, 현 부여군)과 한산군(韓山郡, 현 서천군) 일원에서 이장준(李章俊)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본인 밀정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장준은 1908년 3월부터 1909년 3월까지 의병장 조농운(趙弄云)과 노백인(盧伯仁) 휘하에서 동료 의병 30~130여 명과 총기를 휴대하고 충남 임천ㆍ서천(舒川)ㆍ남포(藍浦)ㆍ비인(庇仁)ㆍ한산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고 한산주재소에서 총기 등을 획득하였으며, 재무주사 송규헌(宋珪憲)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유형식은 1909년 4월 이장준 등 의병 6명과 함께 서천군 방죽동(方竹洞) 우 모로부터 8원 80전, 한산군 나교(羅橋) 박승유(朴承有)로부터 3원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이어 4월 13일에는 한산군 하북면(下北面) 월명리(月明里) 부근에서 밀정 1명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6월 21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 및 강도죄로 종신징역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09년 9월 22일 경성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公州地方裁判所 : 1909. 6. 21)
- 判決文(京城控訴院 : 1909. 9. 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