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년 음력 9월 충북 청풍(淸風)ㆍ충주(忠州)ㆍ단양(丹陽) 일대에서 이명상의진(李明相義陣)의 종사(從事) 및 좌군장(左軍將)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의병장 이명상은 을사늑약 이후 의병 투쟁을 결의하고 의병을 일으켰다. 그 후 김상한의진(金商翰義陣)에 투신하여 소모장(召募將)으로 활약하였다. 1907년 8월 김상한은 이강년의진(李康秊義陣)과 규합한 뒤 독립된 의병진을 편성하여 군사 이진하(李晉夏), 중군장 김규철(金奎哲), 좌군장 민영팔(閔泳八), 우군장 이영승(李榮承), 서기 이치정(李致鼎) 등으로 진영을 정비하였다.
권용달은 1907년 음력 9월 이명상의진에 참여하여 종사를 맡아 충북 청풍ㆍ충주ㆍ단양 일대에서 활동하였으며, 1907년 음력 11월 의병부대의 보초감독(步哨監督)으로 좌군장을 맡아 활동을 하다 1908년 8월경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2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7년을 받고 2년여의 옥고를 치른 뒤 1910년 대사령(大赦令)에 의해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公州地方裁判所 : 1908. 9. 2)
- 刑事第一審事件簿
- 朝鮮總督府官報(1910. 9.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