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충남 연산(連山)에 거주하였는데, 1909년 충남 연산·은진(恩津)과 전북 고산(高山)·여산(礪山) 일대에서 군자금 및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 의병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1907년 일제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강제하여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대한제국의 군대인 진위대(鎭衛隊)와 시위대(侍衛隊)를 강제로 해산하였다.
이에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고 해산군인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국권회복을 위한 의병항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이에 일제는 1908년 5월경부터 강경한 무력진압책으로 선회하였고, 1909년 7월 13일부터 한 달 예정으로 전라도 의병에 대한 진압책으로 남한대토벌작전(南韓大討伐作戰)을 실시하였다. 따라서 대한제국기 의병항쟁은 급격히 쇠퇴하여 1910년경에는 잔여 의병만이 활동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윤치달은 1910년 의병활동의 쇠퇴기에 충남 연산·은진과 전북 고산·여산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임성달(林聖達) 등과 함께 1909년 음력 8월 10일 무기를 휴대하고 연산군 부인처면(夫人處面) 아야리(阿也里) 김철현(金喆鉉)로부터 군자금 60원을 모집하였고, 동년 9월 29일 밤 무기를 휴대하고 연산군 외성면(外城面) 구산리(九山里) 김재기(金在璣)로부터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김영배(金永培)와 상의하여 동년 9월 상순 연산군 부인처면 신왕거리(新王巨里) 김치삼(金致三)으로부터 군수품을 모집하였고, 유치원(兪致元)·김재선(金在先) 등과 논의하여 1910년 1월 19일 밤 전북 고산군 북하면(北下面) 대하리(大下里) 문학현(文學鉉)과 여산군 합선면(合先面) 보성리(保城里) 김기선(金奇先)으로부터 군수품과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또 2월 16일 고산군 운서면(雲西面) 덕동(德洞) 장기호(張奇好)로부터 군수품을 모집하였고, 3월 18일에는 은진군 도고리(島高里)에서 군수품과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었다.
소위 강도(强盜) 및 강도상인죄(强盜傷人罪)로 기소되어 1910년 8월 12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교수형을 받았다. 이에 공소하여 1910년 9월 10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어 상고하였으나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되어 1910
년 10월 31일 대구감옥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全州支部:1910. 8. 12)
- 判決文(高等法院:1910. 10. 1)
- 判決文(大邱控訴院:1910. 9. 10)
- 刑事控訴事件簿·朝鮮總督府官報(1910. 11.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