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음력 11월 전북 태인(泰仁)ㆍ임실(任實)ㆍ전주(全州) 일대에서 정성련의진(鄭聖連義陣)에 참여하여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의병장 정성련은 1908년부터 1909년 3월경까지 전북 태인ㆍ금구(金溝)ㆍ임실ㆍ전주 등지에서 의병 30~40여 명을 거느리고 군수품 모집과 밀고자 처단 등의 활동을 하였다.
김현일은 1908년 음력 11월 23일 정성련의 휘하에서 동료 의병 15~16명과 함께 태인ㆍ임실ㆍ전주 일원을 중심으로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09년 10월 말 금구군 수류면(水流面) 상화리(上禾里)에서 체포되었다.
1909년 11월 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10년 8월 대사령(大赦令)에 의해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11. 8)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6) 제16권 55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