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32년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 김진기는 사회과학 비밀결사에 참여했다. 이 단체는 같은 해 10월 사회과학 독서와 시사문제 등에 대한 연구 비판을 통해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이후 민족운동 단체와의 연결을 모색했다가 발각되어 해산당했다.
1940년 1월말부터 김진기는 동맹통신사(同盟通信社) 경성지부(京城支部)에 입사해 통신 번역에 종사했다. 1943년 6월경부터 9월경까지 2회에 걸쳐 교유하던 회사원과 연희전문학교 학생 2명에게 언론이 ‘아츠섬의 패배’,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해군 원수의 전사’ 등을 제대로 전하지 않고 있다며 일제의 언론 통제를 비판했다. 또한 영・미의 물질적・군사적 능력을 언급하며 일제의 승리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1944년 3월 20일경 김진기는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 병실에서 당시 태평양전쟁의 전세를 이야기하며 “남방(南方)과의 연락로(連絡路)가 차단되는 난국(難局)에 봉착할 것”이며, 일제가 패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진기는 이러한 주장을 하다 1944년 5월 체포됐다. 1944년 7월 1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육군형법(陸軍刑法) 및 (해군형법(海軍刑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44. 7. 17)
- 결정문決定文(경성복심법원:1945. 8. 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