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년 9월부터 전북 금산(錦山)ㆍ고산(高山) 등지에서 노원섭의진(盧元燮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의병장 노원섭은 충남 공주(公州)에서 창의하여 의병 500여 명을 이끌고 1907년 충남 금산, 1908년 충남 공주 용당(龍堂), 전북 무주(茂朱)ㆍ진산(鎭山)ㆍ고산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는 한편, 일본인을 처단하고 일본인의 가옥과 우편국 및 세무서 등을 소각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유경선은 1907년 음력 9월 노원섭의진에 들어가 의병 6~7명과 함께 전북 용담군 일동면(一東面) 양지리(陽地里) 소진후(蘇鎭厚)의 집에서 엽전 20냥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고, 1909년 음력 7월 17일경 정순필 외 7명과 함께 전북 금산군 서일면(書一面) 화림동(花林洞) 배연수로부터 군자금 100원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음력 8월 20일 금산군 남일면(南一面) 초현리(草峴里) 곽치문으로부터 100원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1910년 2월 전북 고산군 일원에서 활동하다가 전주경찰서 고산 주재소 순사대에 체포된 뒤, 이른바 강도ㆍ살인ㆍ상인죄(傷人罪)로 기소되었다. 1910년 4월 13일 전주구재판소에서 징역 15년을 받았다. 1913년 1월 14일 징역 6년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全州區裁判所 : 1910. 4. 13)
- 暴徒狀況月報(1910. 3. 9) 暴徒에 關한 編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