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이종칠은 충남 천안 목천 출신으로 한봉서의진(韓鳳瑞義陣)에 소속되어 충청도 일원에서 활약하였다.
한봉서는 1907년 대한제국의 군대 해산 이후 해산 군인을 규합하여 봉기하였다. 1907년 9월부터 1910년 5월 체포될 때까지 소규모의 의병부대로 유격전을 감행하였다. 한봉서의진은 주로 충청도·강원도·경상도 일원을 넘나들며 활동하였는데, 청주진위대 해산병으로 조직된 노병대의진(盧炳大義陣)과 김운로의진(金雲老義陣), 그리고 상주의 조운식의진(趙雲植義陣)과 연합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이종칠은 1909년 음력 4월경 한봉서의진에 투신하여 이정구(李正九) 등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고 군용금을 징발하는 등의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음력 8월 이종칠은 이정구 등 9명과 함께 충북 청주군 백자동(百子洞) 이장 박내천(朴來舛)이 의병의 소재를 일본군 수비대에 밀고하여 동지 2명이 피살되었으므로 그 원수를 갚고자 총살하였다. 그리고 군용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된 이종칠은 1910년 3월 9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징역 5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公州地方裁判所 淸州支部:1910. 3. 9)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 제1집 385~386면
- 判決文(京城控訴院:1910. 4.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