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전남 장흥(長興) 출신으로 1907년 황준성의진(黃俊聖義陣)에 가담하여 전남 완
도(莞島) 일대에서 활동한 김성택(金聖澤)의 의병 활동을 지원하였다.
1907년 일제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강제하여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대한제국의 군대인 진위대(鎭衛隊)와 시위대(侍衛隊)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에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고 해산군인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의병부
대들의 전투력은 한층 높아졌다.
전북 진안 출신의 황준성은 대한제국군의 참령으로 군대 해산에 반대하여 봉
기하였으나 1908년 1월 28일 소위 내란죄로 유형 10년을 받고 전남 완도에 유배
중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탈출하였다. 그리하여 의병
장 강성택(姜成宅) 등 수십 명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고금(古今)·청산(靑
山)·여호(麗湖) 등의 여러 섬과 해남군 화이면(花二面) 일원에서 활동하였다.1909년 7월 황준성은 완도군 북종면(北從面) 이진리(梨津里)에서 추기엽(秋琪
燁)·황두일(黃斗一) 등에 의해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강성택·추기엽 등
을 부장으로 삼고 일진회원 박원재(朴元在)와 밀정 지태진(陳泰鎭)을 총살하는
등 해남을 비롯한 서남해 일원의 섬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김성택은 황준성
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의병활동을 시작하였다.
김차홍은 1907년 음력 12월 20일부터 28일까지 김성택의 휘하에서 의병 20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전남 장흥·장성(長城) 일원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소위 폭동죄(暴動罪)로 기소되어 1908년 11월 4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노역 2년
에 처해졌다. 이에 공소하였으나 1908년 12월 8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刑事控訴事件簿
- 判決文(大邱控訴院:1908. 12.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