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19년 3월 4일 평남 성천군(成川郡) 성천읍(成川邑)에서 주민 400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천도교 성천 교구장이던 이돈하(李燉夏)는 2월 하순 평양에서 열렸던 대교구장회의에 참석하였다가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2월 28일 밤차로 급히 성천에 돌아왔다. 이돈하는 3월 1일 성천에 도착하자마자 교우들을 소집하여 만세운동계획을 잡았다. 이들은 3월 4일 오전 11시에 군내 천도교인들을 총동원하여 교구당 앞에 집합할 것을 결의하고, 이대수(李大秀)를 구룡(九龍)·능중(陵中) 2면에, 박치상(朴緻祥)을 삼덕면(三德面)·쌍룡면(雙龍面)에 석이원(石履元)을 사가면(四佳面)에 급파하여 교우들을 동원하였다.
3월 4일 오전 11시가 되자 읍내 천도교구당 앞에 모인 군중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한 후 미리 준비하였던 태극기를 나누어 가지고 가두시위를 하였다. 시위 군중은 읍내 상부(上部)리 헌병대를 향하여 나아갔다. 이들이 헌병대 정문 앞에 도착하자 일본인 헌병과 보조원 10여 명이 일렬횡대로 서 있다가 갑자기 군중에게 무차별 발포를 하여 20여 명이 사망했다.
시위에 참여하였던 이학영은 체포되어 1919년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高等法院:1919. 9. 18)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389~39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