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1908년 충북 영춘(永春)ㆍ영월(寧越)ㆍ단양(丹陽)ㆍ제천(堤川郡) 등지에서 이강년의진(李康秊義陣)의 포군(砲軍)으로 일본군과의 교전, 순사 처단 및 주재소 공격 등의 활동을 하였고, 1909년 권병하의진(權炳夏義陣)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7년 음력 7월 12~13일경 이강년의진에 참여하여 포군이 되었다. 같은 해 7월 14~15일경 이강년 등 의병 동료 170여 명과 함께 영춘군 방두리(方頭里)에서 일본 순사대와 교전하여 순사 2명을 총살하였고, 그날 밤 순사주재소를 공격하였다. 같은 해 음력 7월 17일에는 제천군 오미동(五味洞)에서 일본군 수비대의 습격을 받고 교전하였다. 1908년 음력 7월 청풍군(淸風郡)에서 일본군 수비대의 공격을 받아 이강년이 체포되고, 다수의 의병들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고 흩어지자 이효경은 귀향하여 자택에 숨어 지냈다.
1909년 음력 2월 권병하의진에 들어가 단양군 동면(東面) 금곡리(金谷里)와 영춘군 주야면(住野面) 모리(毛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0년 4월 4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살인, 폭동죄로 유형(流刑) 15년을 받았다. 1910년 8월 은사령(恩赦令)에 의해 풀려났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公州地方裁判所 淸州支部 : 1910. 4. 4)
- 受刑人名簿
- 朝鮮總督府官報(1910. 9.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