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성화는 출신지 미상이나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下東面) 명생리(命生里)에 거주하였다. 1907년 음력 7월 30일경부터 강원도 영춘 일대에서 원건상의진(元建常義陣)의 십장(十長)으로 활동하였다.
원건상은 본명이 덕상(德常)이다. 강원도 영춘군 어상천면 연곡리 출신의 양반으로 의병장 이강년(李康秊)의 좌종사 원도상(元道常)의 친척이다. 원건상은 1905년 10월 단양에서 창의하려다 실패한 정운경(鄭雲卿)과 함께 의병활동을 시작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후 8월 19일 호좌의진의 대장 이강년이 충주·문경 등지를 거쳐 단양으로 북상하였을 때, 원건상은 삼척 등지에서 의병을 모집한 뒤 합류하여 소모장이 되었다. 1908년 5월 9일 원건상은 이강년의 휘하에서 의병 100여 명을 이끌고 영춘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동년 6월 이강년이 체포된 뒤 원건상은 충북·경북·강원의 접경 지대를 중심으로 소부대를 이끌고 유격전을 감행하며 일본군에 항전하였다.
김성화는 1907년 음력 7월 30일 경 원건상의진에 속하여 십장으로 있으면서 영춘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1910년 5월 11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公州地方裁判所 淸州支部:1910. 5. 11)
- 韓末의 堤川義兵(具玩會, 1997) 346~34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