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만주에서 독립군(獨立軍)으로 활동하다 일제가 일으킨 소위 간도참변(間島慘變)으로 희생되었다.
1920년 6월 북간도의 봉오동(鳳梧洞)에서 독립군에게 대패 당한 일제의 조선군(朝鮮軍)은 그 보복으로 서·북간도지역에 근거지를 구축하고 항일전을 펼치고 있는 독립군들을 소멸시키기 위해 이른바 「간도지방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剿討計劃)」을 세웠다. 이 계획에 의거 대병력을 서·북간도지역에 침입시켜 간도참변을 일으켰다. 일본군은 독립군의 기지이자 재만 한인이 많이 살고 있는 혼춘(琿瑃)·왕청(王淸)·연길(延吉)·화룡(和龍)·영안(寧安)·흥경(興京)·유하(柳河)·관전현(寬甸縣) 등지에서 수많은 양민들을 학살하였으며 가옥·학교·교회에 방화하고 곡식과 가축에도 불을 질러 한인들의 살길을 박탈하였다.
특히 연길과 화룡, 혼춘에서 전개된 일본군의 만행은 한인들의 생활기반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형태로 진행되어 독립운동 세력뿐만 아니라 무고한 한인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일제의 이러한 진압 작전은 1920년 10월부터 1921년 4월 초까지 지속되었다.
최천일은 1912년 4월 간민교육회(墾民敎育會)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는데, 이 단체는 1909년 9월에 이동춘(李同春) 등이 발기하였으며, 1910년 3월 길림동남로(吉林東南路) 병비도관찰사서(兵備道觀察使署)의 공식 인가를 얻어 정식으로 성립된 간도지역 한인들의 민족교육과 자치를 담당했던 조직이었다. 이후 최천일은 1919년 4월에 대한국민회지부(大韓國民議會支部) 제1회 총회(總會)에 참석하고 독립군(獨立軍)으로 활동하다 일제가 일으킨 소위 간도참변 때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決死隊 및 新國民會支部에 관한 건(機密公信 제51호, 1919. 4. 30)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 제10권
- 保安法 違反者 取調送致에 관한 건(朝憲機 제521호, 1912. 4. 13)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 제1권
- 간민 사상자 구휼금 액수 및 매장비 일람표, 獨立運動史料-대만편 3(국가보훈처) 3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