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옥(出獄) : 형기를 마치고 감옥에서 석방되어 나옴.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박세용은 경남 동래군(東萊郡) 기장면(機長面) 출신으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운동 등을 통해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일제에 검거되어 1928년 11월 2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그후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1928~1929년에 박세용은 일본 부산시(富山市)에서 노동운동에 종사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1931년 8월 26일 일본공산당에 입당하였다. 박세용은 주로 일본 전국노동조합협의회[全協] 부산토목건축노조(富山土木建築勞組)에서 활동하였다. 당시 전멸상태에 있던 전협계 부산토목건축노동조합을 재건하고자 1931년 7월 동지들과 협의하고 전협의 지도에 따라 그해 8월 중 3회에 걸쳐 모임을 갖고 북륙지부준비회(北陸支部準備會)를 개최하였다. 이같이 노동조합 재건활동을 하던 중 노동조합원 43명이 그해 11월 5일 일제히 검거되고 말았다. 박세용도 1931년 11월 30일 일제경찰에 검거되어 1932년 2월 10일에 기소되어 징역 6년의 판결을 받고 금택형무소(金澤刑務所)에 수감되었다. 금택형무소에서 감옥생활을 하던 박세용은 2년 후 내량형무소(奈良刑務所)로 이감되어 복역하다가 1935년 6월 늑막염과 폐결핵으로 중태가 되어 가출옥하였다. 그러나 박세용은 감옥에서 나온지 2개월 후 옥고의 여독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朝鮮中央日報(1935. 8. 14)
- 東亞日報(1935. 8. 14)
- 近代日本社會運動史人物大事典(1997) 4권, 206면
- 社會運動의 狀況(1932) 441, 470, 47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