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최성재는 출신지가 미상이나 전남 순천군(順天郡) 쌍암면(雙岩面) 구룡리(九龍里)에 거주하였다. 1908년 12월 조기화의진(趙基化義陣)에 투신하여 선봉(先鋒)으로 활동하다가 조기화가 전사한 뒤 의병장이 되었다.
조기화는 순천군 송광면 대곡리 출신의 의병장으로 부장(副將) 강승우(姜勝宇)·선봉장(先鋒將) 최성재(崔性裁) 등을 거느리고 순천(順天)·곡성(谷城) 일대에서 활약하던 중 곡성 목사동(木寺洞)에서 일본군 토벌대와 충돌하여 전사하였다. 그 뒤 부장 강승우는 병을 얻어 물러나고 최성재가 의병진을 거느리게 되었다.
최성재는 의병 50여 명을 거느리는 의병장으로 순천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1909년 3월 순천에서 일본군 토벌대와 전투하여 부하 5명을 잃고 피신하여 경남 남해(南海)·전남 구례(求禮) 등지로 이동하다가 동년 8월 29일 구례주재소 순사에게 체포되었다. 동년 9월 8일 광주지방재판소로 압송 도중 탈출하다가 총살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獨立運動史資料15 義兵篇ⅷ(國史編纂委員會) 495·496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