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본적과 거주지가 미상이나 황해도 곡산(谷山) 일원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2월 4일 의병 8명은 곡산헌병분견소(谷山憲兵分遣所) 상등병 1명 및 보조원 4명으로 조직된 토벌대와 곡산군 멱미면(覓美面)에서 교전하여 의병 2명이 순국하고 수 명이 부상을 입고 1명이 체포되었다. 또 멱미면 상단리(上端里)에서 곡산군 화촌면(花村面)으로 통하는 사잇길에서 의병 20여 명은 토벌대와 교전하여 2명이 순국하고 2명의 부상자를 데리고 퇴각했다. 첫번째 전투에서 체포된 김칠성은 1908년 12월 서흥경찰서(瑞興警察署)에서 해주지방재판소(海州地方裁判所)로 압송 도중 도주하였다는 사실을 자백하였는데, 두번째 전투가 일어난 틈을 타 탈출하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자백으로 현장에서 일본헌병에게 사살·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獨立運動史 資料13 義兵篇ⅳ(國史編纂委員會) 446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