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1908년 공태원의진(孔泰元義陣)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40~50명의 의병으로 조직된 공태원의진은 1907년 8월부터 1909년까지 황해도 일대에서 활동하면서 연기우의진(延基羽義陣), 차두환의진(車斗煥義陣) 등과 연합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김백용은 공태원의진에 소속되어 강원도 인제(麟蹄)·홍천(洪川), 황해도 연안(延安)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음력 4월 11일 김백용을 비롯한 의병 15명은 강원도 강릉(江陵)에 거주하는 이임득(李任得)을 초모하여 군수품을 운반하였으며, 1908년 5월 2일 추흠돌(秋欠乭)을 초모하여 군수품을 운반하였다.
그 후 김백용은 1909년 5월 29일 연암수비대(燕巖守備隊)에 의해 동료 의병 4인과 함께 체포되어 사살·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獨立運動史 資料14 義兵篇ⅶ(國史編纂委員會, 1986) 658면
- 韓國獨立運動史 資料11 義兵篇ⅳ(國史編纂委員會, 1986) 23~24·355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