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본적은 미상이나 황해도 연안군 용천면(龍川面) 산대동(山垈洞)에 거주하였다. 1909년 이진룡(李鎭龍)의 예하 부대장이었던 이근수 의진(李根秀 義陣)에 참여하여 황해도 일원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총살되었다.
이진룡은 1907년 8월 황해도 평산에서 박기섭(朴箕燮)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여 창의하였다. 이진룡(李鎭龍)은 강화도의 지홍기 부대(池洪基 部隊), 황해도의 연기우 부대(延起羽 部隊)와 연합하여 1911년까지 해주·평산·곡산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1911년 10월 남만주로 망명하였는데, 이근수(李根守(秀)·윤기태(尹基泰)·고주서(高周西)·공태원(孔泰元) 등이 그 예하 부대장이었다.
이근수는 1907년부터 이진용의 부장(部將)으로 활약하였다. 이진용 부대는1909년 1월 중순 온정원(溫井院) 일대에서 일본군 수비대의 압력으로 연안(延安) 청단(靑丹)역의 중간지구를 거쳐 남쪽의 연안 도서로 진출하였다. 이들의 행적을 따라 일본군 해주수비대(海州守備隊)는 상등병 이하 헌병·순사·통역 등 18명으로 구성된 토벌대를 연평도(延坪島)로 파견하였다. 1월 17일 연평도에 상륙한 토벌대는 연안 선박을 한 곳으로 집결시키고 전망초(前望哨)를 배치하여 해상교통을 경계하였다. 이 때 이근수는 의병 60여 명을 거느리고 2척의 배로 나누어 증산도(甑山島) 방면에서 연평도 북부로 상륙하였으나 기다리고 있던 토벌대와 접전이 벌어져 46명이 전사하였다. 이근수를 비롯한 나머지 의병은 배 1척을 타고 증산도 방면으로 퇴각하였다.
김춘식은 이근수 의진에 참여하여 연안군 일원에서 활동하던 중 1909년 5월 29일 연안수비대에 체포되어 사살·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朝鮮獨立運動(金正明編) ⅰ권 218~219면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제14권 義兵篇ⅶ 65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