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어윤흥은 1908년 충북 보은군(報恩郡) 일대에서 노병대의진(盧炳大義陣)에 투신하여 활동하다가 동년 7월 보은군 관리에서 보은주재소 순사대와 일본군 수비대에 의해 체포되었다.
노병대는 구한국군 육군 부위(副尉)였다. 1907년 8월 대한제국의 군대 해산 이후 해산 군인을 규합하여 경기도 광주의 임용헌(林容憲), 충남 연산의 김운노(金雲老),송창헌(宋昌憲) 등과 함께 속리산에서 봉기하였다. 노병대는 1907년 8월부터 1908년 7월까지 충북 보은,경북 상주,경남 거창,안의,전북 무주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노병대는 청주진위대(淸州鎭衛隊) 해산병으로 의병진을 결성하고 김운로의진(金雲老義陣),상주의 조운식의진(趙雲植義陣) 등의 의병부대와 연합투쟁을 전개하였다. 1908년 7월 13일 충북 보은군 회부면(恢釜面) 관리(冠里)에 있는 주점에서 체포되었다.
어윤흥은 1908년 7월 13일 의병장 노병대와 함께 보은주재소 순사 3명과 보은수비대 병사 5명으로 구성된 토벌대에 의해 체포되어 피살,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暴徒에 關한 編冊(경무국, 1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