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8년 7월 전북 태인군(泰仁郡)에서 이동식(李東植)의 주도 아래 의병 활동을 모의하다 체포되어 피살, 순국하였다.
1907년 후반 고종의 강제퇴위, 군대해산 등으로 인해 민족적 위기 의식이 갈수록 고조되었다. 특히 호남지방에서는 의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였다. 1906년 6월 최익현(崔益鉉)과 임병찬(林炳瓚) 등이 주도한 의병이 호남의병의 활성화에 영향을 주었다.
전북 태인군 동지면(東池面) 계삼리(鷄三里)에 거주하던 유생 이동식은 73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의병을 도모하던 중이었다. 그는 동학 진압 활동으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특사를 받고 1907년 3월에 귀가한 후 의진의 참모로 활동하고 있었다.
1908년 7월 16일 이동식은 자택에 20여 명을 모아 의병 활동을 도모하였다. 이때 일본인 교사의 밀고로 현장에 있던 김중기를 비롯한 마을 주민 김정명(金鄭明) 등이 일제 수비대에 체포되었다.
1908년 7월 21일 김중기 등 5명이 전주수비기병대(全州守備騎兵隊)에 감금되어 취조를 받던 중, 새벽 2시 탈출을 시도하다가 김정명을 제외한 김중기 등 4명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暴徒逮捕의 件(1908. 7. 21), 捕捉暴徒 逃走의 件(1908. 7. 23) 暴徒에 關한 編冊(警務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