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김문삼은 전북 함열(咸悅, 현 益山) 출신으로 1909년 9월 전북 여산(驪山),강경(江京)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하다가 전사하였다.
함열군 북일면(北一面) 맹동(孟洞)의 채춘경(蔡春京), 장선리(長善里)의 서여장(徐汝長)을 비롯하여 김열경(金列京),김사련(金士連),김한필(金漢必),송주련(宋周連),신내선(申乃善),최군집(崔君執),한상옥(漢相玉) 등 10여 명이 충남 강경(江京),전북 여산(驪山)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하다가 남원경찰서 순사대에 체포되었는데, 그 중 김문삼,채춘경,서여장 등 3인은 도주하였다.
이 밖에 김문삼은 1909년 음력 3월 24일 김양준(金陽俊) 등 7명과 전북 함열군 북이면 성당리의 이모를 협박하여 군자금 18원을 모집하였고, 9월 상순에는 함열읍 이윤근(李允根)으로부터 30원을 모집하였다. 1909년 10월 20일 김문삼은 오덕삼(吳德涁) 등 4명과 협의하여 전북 여산군 서삼면 도마리 김문연, 10월 21일에는 전북 익산군 사제면 만대리 김응구에게 군자금의 모집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던 김문삼은 일제 토벌대의 공격을 받아 교전 중 전사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金陽俊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1910. 1. 12)
- 매일신보(1912. 3. 12)
- 吳德?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1910. 5. 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