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전남 광주(光州)에 거주하였다.
의병으로 전남 광주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으로 군대까지 해산당하는 등 일제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자 해산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의병전쟁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정사천은 광주 갈전면(葛田面) 궁산(弓山)에 거주하면서 목수일을 하고 있다가, 국권의 위기를 절감하고 1907년 12월 하순 기삼연(奇三衍) 의진에 참여하여 광주 일대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08년 2월 22일 오전 2시 30분 경 일본군 헌병대 대원(大原) 특무조장(特務曹長) 일행에 의해 전남 담양(潭陽) 인근에서 붙잡혀 신문(訊問)을 받았으나, 죽음을 결단하고 입을 열지 않아 끝내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第9輯 264·275面(暴徒에 관한 編冊 光秘發 제14호 1908. 2. 22 ·光秘收 제162호 1908. 2. 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