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이진룡(李鎭龍) 의진에서 활동하였다. 이진룡은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고 일제의 내정간섭이 심화되자, 박정빈(朴正彬)·조맹선(趙孟善)·신준빈(申俊彬)·신정희(申貞熙)·한정만(韓貞萬)과 함께 평산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진룡은1908년말 하상태(河相泰)·한정만과 함께 강화도에서 온 지홍기(池洪基) 의진과 연합하여 황해도 일대에서 활약하였으며, 1909년 5월에는 연기우(延基羽) 등과 철원·평산·배천 등 3도(道)를 무대로 활동하였다가 국내에서 의병운동이 불가능해지자, 1911년 10월 지휘권을 한정만에게 위임하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김현봉은 이진룡 의진에서 활동 중 1909년 9월 2일 황해도 평산군 문구면(文區面)에 정찰하러 왔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9월 8일 일본군의 강요로 황해도 서흥군(瑞興郡) 의병근거지로 일본군을 안내하다가 서흥군 용연방(龍淵坊) 백암동(百岩洞)에서 탈출을 기도하였으나 일본군의 발포로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暴徒에 관한 編冊 黃警秘收 第653號 1909. 9. 13) 第15輯 568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