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1907년 이후 양봉익(梁鳳翊) 의진과 홍범도(洪範圖) 의진에서 활동하였다. 일제는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내정을 간섭하였다. 나아가 1907년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정규군인 진위대와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키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다. 1907년 8월부터는 해산군인들이 의병진에 가담함으로써 전국적인 항쟁으로 발전하였고 참여계층도 유림, 농민, 포수, 해산군인을 비롯 상인, 광부 등의 평민들이 대거 참여하여 국민전쟁의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이같은 시기에 송상봉은 양봉익(梁鳳翼) 의진에 참여하여 1907년 함남 장진군 동상면(東上面) 운산동(雲山洞)에서 군수품을 모집하고 부일배를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8년에는 150여 명의 군사들과 함께 함남 삼수군(三水郡)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는 등 대일항쟁을 전개하였고, 같은 해 3월에는 장진군 운산동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벌였다. 그러나 빙하산(氷河山)에서 일본 정찰대를 기습할 목적으로 행군 중 갑자기 일본군과 조우하여 패전하기도 하였다. 이후 1908년 8월 휘하 의병 40여 명을 이끌고 홍범도(洪範圖) 의진에 합류하여 장진군 일대에서 활동하다 일본군의 기습을 받고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第11輯 220, 221面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第16輯 565面
- 대한제국기 의병연구(박민영, 한울, 19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