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황해도 연안(延安) 등지에서 이근수(李根守) 의진의 분대장으로 활동하였고, 1909년 1월 19일 연평도 상륙 후 일병의 공격을 받고 치열하게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일제는 1907년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곧바로 군대해산을 강행하였다. 이러한 국가존망의 위기에 직면하여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군과 친일주구배들을 처단하며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서여선은 일본군을 축출하고자 이근수 의진에 투신하여 황해도 연안 일대에서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당시 이근수는 의병장 이진룡(李鎭龍)부대의 부장(副將)으로 소규모의 유격전으로 일본군과 수많은 접전을 벌여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이근수는 1907년 황해도 평산·해주 일대에서 적과 30여 차례 교전하는 등 활동하다가 1909년 연안(延安)·청단(靑丹)을 거쳐 남방 연안 도서로 진출하였으며 1909년 1월 19일 새벽 약 60여 명의 병력을 두 척의 배로 나누어 증산도(甑山島) 방면에서 연평도(延坪島) 북부로 상륙하여 과세(過歲)하고자 하였다. 서여선은 이때 참여하여 분대장(分隊長)으로 활약하였다. 당시 이근수 의진의 지휘편제는 총대장(總大將) 이근수, 중대장(中隊長) 공석두(孔石斗), 분대장(分隊長) 최흥대(崔興大)·서여선(徐汝善)·원광덕(元廣德)이었다. 그러나 이미 연평도에 진을 치고 있던 일본수비대와 동일 정오부터 5시간 여에 걸친 치열한 교전 끝에 서여선은 이근수 이하 45명의 의병들과 함께 전사하고 말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第13輯 165, 166面(暴徒에 관한 編冊 黃警發 第33號 1909. 1. 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