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의병으로 전라남도 해남·진도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이필상은 윤이병(尹履炳) 등과 함께 1907년 7월 일본외무대신 임동(林董)이 국교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 건너왔을 때 군중을 모아 놓고 "우리 황제가 일본으로 간다. 황제의 자리를 넘겨준다" 또는 "일본이 장차 우리나라에 대해서 이익이 되지 못하는 조약을 체결한다"라고 말하였으며, "이것은 필경 현 정부의 대신들이 충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니 정부 대신들을 죽이는 것만 나은 것이 없다"고 연설하였다. 이에 군중들이 총리대신인 이완용의 집에 불을 놓아 태워버렸다. 이필상은 1908년 1월 유형(流刑) 10년을 받고 진도(珍島)에 유배되었다.
이필상은 유배 중이던 1908년 11월 경 유배지를 탈출하여 해남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주민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취하였으며, 해남지방의 의병에 가담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진도읍내에 들어온 4, 50명의 의병과 함께 활동하다가 1909년 1월 3일 일본군 수비대의 공격을 받고 도피하던 도중 1월 4일 일본 순사에 의해 붙잡혔다. 그는 체포되어 호송되던 중이던 1월 7일 오후 7시 경 해남군(海南郡) 개초리(開初里) 부근의 산속에서 어둠을 틈타 탈출을 시도하다가 총에 맞아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第13輯 91·112面(暴徒에 관한 編冊 警收 제101호의 1, 1909. 1. 8·警收 제149호의 1, 1909. 1. 15)
- 高宗純宗實錄(純宗 2년 1월 1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