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박래승은 1907년 9월 가평에서 창의하여 임운명(林雲明),김석하(金錫夏) 등 70여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활동하다가 일경에게 피살 순국하였다.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으로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된 뒤,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의병투쟁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경기도의 경우에도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 침략 세력과 그에 편승한 친일 주구배에 대한 공격을 통해 응징이 전개되었다.
박래승은 경기도 가평(加平) 출신의 유생으로 1907년 9월 가평에서 의병을 일으켜 70여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양주,포천,영평,철원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성질이 표한(慓悍)하였으나 부하들을 잘 돌봐 명망이 있었다. 이후 박대승은 1908년 8월 양주군 초부면(草阜面) 고랑(高浪)에서 일본 수비대와 교전하다가 전사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皇城新聞(1907. 11. 22)
- 독립신문(1920. 5. 22)
- 梅泉野錄(黃玹) 卷6, 1908. 8
- 暴徒史編輯 資料(警務局, 1909) 510면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1 511~51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 제1집 126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권 53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