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1907년 충북 보은(報恩)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으며 1914년 일본인 구축과 이완용·박영효 등의 총살계획을 수립하였다.
일제에 의해 '을사조약'과 '정미7조약'이 강제로 체결됨으로서 대한제국은 준식민지 상황이 되었다. 이에 해산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하고 의병전쟁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김재성은 1907년 8월 충청북도 보은군 일대에서 수십명의 의병들을 모집하여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의병활동 중 1908년 보은군 읍내에서 일본인 청수민치(淸水民治) 등 4명을 포박하여 보은군청(報恩郡廳) 문밖에서 총살시키기도 하였다.
1914년 음력 8월에는 충북 괴산군(槐山郡) 청천면(靑川面) 지촌리(芝村里)에서 정운기(鄭雲淇)와 회합을 갖고 현재 자신과 전라도의 홍재식(洪在植)·서간도의 이래춘(李來春)은 이태왕(李太王:光武皇帝) 전하의 명을 받고 군사를 모집하기로 하였다고 하면서 총기는 만주에서 구입하고 동시에 만주에 있는 군사들의 도움을 받아 군사가 모집되면 조선에 있는 일본인 전부를 격퇴하고 이완용·박영효를 살해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실제로 보은면장(報恩面長) 박창빈(朴昌彬)으로부터 권총 10정을 정운기를 통하여 제공받아 박영효(朴泳孝) 등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실행하려다 사전에 발각되어 일경에 붙잡혔다. 이 일로 정운기는 징역 5년형을 받았으며 김재성은 이 계획과 과거 의병경력으로 사형을 받고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1輯 411∼415面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1915. 10.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