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1919년 3월 8일 평남 강서군(江西郡) 함종면(咸從面) 일대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3월 8일 정오 무렵 공립보통학교에 경성의학전문학교 출신 강기팔(姜基 )을 중심으로 김용수(金龍洙)·이능훈(李能勳)·오영선(吳永善) 등이 5백여 명의 시위군중을 모아놓고 일장기 게양대에 태극기를 게양한 뒤,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시위행진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시위대열에 함종지방 뿐만 아니라, 인근 지방인 발산(鉢山) 승영(升盈) 광덕(廣德) 계명(桂明) 등 각 동리에서도 참가하였다.
이렇게 모인 군중 2천여 명은 개회를 선언하고 가두행진을 하였다. 지도부는 군중에게 비폭력 운동을 요청하고, 일본 헌병 출장소장 복영(福永) 상등병에게도 그 뜻을 전하여 무력 진압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평화적 시위를 마칠 즈음, 일본 헌병들은 돌연히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여 시위군중을 해산시키고, 시위대열에 참가한 사람들을 체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효근(李孝根)은 일본 헌병의 무차별 사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262∼263面
- 韓國獨立運動史略(金秉祚, 1920) 33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