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활약하였다. 1905년 11월 강제로 체결된 '을사조약(乙巳條約)'이 강제로 체결되자 고종황제가 정환직(鄭煥直)에게 의병을 일으키라는 뜻을 전했다. 정환직은 아들 용기(鏞基)를 고향 영천에 보내 의병을 소모하게 하였다. 이에 따라 1906년 3월 산남의진이 조직되었다. 정용기 의병장은 1907년 10월 7일 입암(立岩)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으며, 그 아버지 정환직이 제2대 의병대장이 되었다. 남경숙은 1907년 이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경북 청송(靑松)·흥해(興海)·영덕(盈德) 등지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때 의진은 4개 소대로 재편성되었는데, 남경숙은 제2초장(哨長)으로 활동하였다. 동년 12월 5일에 영덕군(盈德郡) 부근 주방(周防)에서 일 헌병 영덕분견대의 야간 기습을 받자 이에 응전하던 중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密大日記(일본 방위연구소 도서실 소장, 密受 제16호, 1908. 1.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