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1919년 평북 삭주(朔州)에서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순국하였다.
이곳의 기독교측에서는 민족대표인 이승훈(李昇薰)과 유여대(劉如大)가 상의하여 송문정(宋文正) 목사를 밀파하여 사전에 연락이 되어 있었고 천도교측에서는 의주의 최석련이 3월 1일 독립선언서를 보냄으로써 일찍부터 시위 분위기가 무르익어 있었다.
그리하여 3월 5일 삭주군 읍내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기독교인, 천도교인과 시민이 합세한 3,000여 명의 군중이 시내를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으며 헌병대 청사까지 진격, 적경과 충돌하여 4명의 순국자가 발생하였다.
이어 3월 31일과 4월 1일 두차례에 걸쳐 수천 명의 군중이 헌병분견소를 포위하고 유리창을 부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으며 적경의 발포로 부상자를 내었다. 계속하여 와남면(外南面) 대관리(大館里)에서도 수천 명의 군중들이 시위운동을 벌었다.
4월 6일에는 6∼7,000명의 군중이 만세시위를 벌였으며 그중 200여 명으로 결사대를 편성하여 일본군의 제지에 대항하였고 이 과정에서 일본군의 발포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최석철은 이와 같은 삭주군의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여 수천 명의 군중과 함께 활동하다가 일경의 발포로 현장에서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獨立運動史略(金秉祚, 1920) 上篇 68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