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충북 청풍(淸風) 사람이다. 충북 청풍 일대에서 의병 지원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5년 11월 강제로 체결된 '을사조약(乙巳條約)'에 이어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으로 군대까지 해산당하는 등 일제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해산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전국적인 민족전쟁으로 확대되었다.
권영선은 충북 청풍군 상동면(上東面) 명암동(明岩洞)에 거주하면서 양총·화승총·화약·탄환·군도(軍刀)·창 등 의병의 군수물자를 은닉하여 주며 의병에 대한 지원 활동을 통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08년 1월 첩보를 입수한 일본군 영천수비대(榮川守備隊)에 의해 포위, 급습당하여 김윤학(金潤學)·이근백(李根伯)·이동인(李東仁) 등과 함께 붙잡혔다. 권영선을 포함한 4명은 동년 1월 5일 재판 절차 없이 일본군에 의해 청풍의 운학동(雲鶴洞)에서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末의 堤川義兵(具玩會, 집문당, 1997) 408面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第8輯 556面(暴徒에 관한 編冊, 榮秘發 제15호 1908. 1. 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