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충북 청풍(淸風) 사람이다.
충북 청풍 일대에서 의병 지원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으로 해산된 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의병전쟁이 전국적인 국민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이 같은 시기에 이동인은 충북 청풍군 상동면(上東面) 명암동(明岩洞)에 거주하면서 양총·화승총·화약·탄환·군도(軍刀)·창 등 군수물자를 은닉하여 의병을 지원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08년 1월 첩보를 입수한 일본군 영천수비대(榮川守備隊)에 의해 포위·급습 당하여 김윤학(金潤學)·권영선(權永先)·이근백(李根伯) 등과 함께 붙잡혔다. 이동인을 포함한 위 4명은 동년 1월 5일 재판절차 없이 일본군에 의해 청풍군 운학동(雲鶴洞)에서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末의 堤川義兵(具玩會, 집문당, 1997) 548面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第8輯 556面(暴徒에 관한 編冊 榮秘發 제15호 1908. 1. 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