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1919년 평북 의주군(義州郡)의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이 지역의 3ㆍ1운동은 민족대표의 한분인 유여대(劉如大) 목사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따라서 동년 2월부터 거사의 준비가 치밀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이윽고 서울과 같은 3월 1일 오후 2시 의주 서부교회 광장(養實學校 운동장)에는 양실학교 학생과 교직원, 학부형을 비롯하여 사전에 연락을 받은 주변 농촌지역의 기독교인 등 1,000여명의 군중이 운집하였다. 유여대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황대벽(黃大闢)의 독립에 관한 연설이 끝나자 학생들의 독립가(獨立歌)에 맞추어 군중들은 시위행진에 들어갔다. 3일에는 1,200여 명의 군중이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일본군은 창, 칼, 쇠갈쿠리 등으로 무차별적인 탄압을 자행하였다. 이에 흥분한 군중은 일본 헌병대와 관공서로 몰려가 항의시위를 벌였고 학생들은 동맹휴교로 맞섰다. 상인들은 철시(撤市)하고 한국인 관리들은 동맹퇴직을 결의하는 등 항일의 기세는 더욱 거세어져 갔다. 3월 27일에는 읍내 장터에서 3,000여 명의 군중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고 4월 1일에도 시위가 전개되었는데 일본군의 실탄사격으로 사상자가 속출하였다. 읍내 외의 지역에서도 시위가 벌어져 3월 16일 광평면에서 시위가 있었는데 일본군의 실탄사격에 맞서 시위대가 일본군의 총기를 탈취하기도 하였다. 28일 주내면(州內面)에서 600여 명, 월화면에서 수백여 명의 시위가 있었고 30일에는 고녕삭면(古寧朔面)에서 3,000여 명의 군중이 일군의 사격에 맞서 헌병주재소를 파괴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다 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김용담도 이와 같은 의주군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일경의 발포로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獨立運動史略(金秉祚, 1920) 上篇 65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