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1919년 3월 평북 구성군(龜城郡)의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구성군의 만세시위는 군내 각처에서 수 차례에 걸쳐 전개되었다. 먼저 동년 3월 11일 시위운동의 전국적인 확산에 발맞추어 군내 남시(南市)에서 400여 명의 시위군중이 독립만세를 절규하며 헌병들이 발포에 맞서 헌병주재소로 쇄도하는 등 활동하였다.
시위운동의 불길은 계속되어 동월 30일에는 오전과 정오 두 차례에 걸쳐 천도교인을 중심한 300여 명의 군중이 읍내 성안으로 몰려들며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 헌병경찰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려 하자 군중과 일경이 충돌하여 수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3월 31일은 남시(南市)의 장날이었다. 이날 정오를 기하여 5,000여 명의 군중이 대대적인 시위운동을 벌였다. 일경의 실탄 사격 등 무자비한 탄압에 격분한 군중은 헌병주재소를 포위하고 헌병을 구타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고 역시 헌병의 발포로 7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같은 날 인근의 신시(新市)에서도 만세시위가 전개되어 구성군은 만세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즉 이날 정오에 1,000여 명의 군중이 헌병주재소로 몰려들며 시위투쟁을 벌였고 일헌병의 발포로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김찬두는 이러한 구성군의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경의 발포로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獨立運動史略(金秉祚, 1920) 上篇 51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