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1896년 유인석(柳麟錫)의병장이 이끄는 제천의진(堤川義陣)에 소속되어 포군(砲軍)으로 활동하였다.
1895년 11월(음력) 안승우(安承禹), 이춘영(李春永) 등은 토적복수(討賊復讐)를 기치로 강원도 원주에서 거의한 후 유인석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충북 제천에서 진용을 재편성하였다. 피용학은 이때 의진에 참여하여 포군(砲軍)으로 활동하였다.
제천의진은 1896년 2월 중부지방의 요충지인 충주성을 점령하며 기세를 떨쳤고 수안보와 가흥(佳興)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적군의 재공격으로 의진은 충주성에서 후퇴하였다.
제천의진은 중국 요동으로 건너가 장기항전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단양에서 진영을 정비한 뒤 원주를 거쳐 영월·평창·정선을 경유하여 평안도 방면으로 북상하였다. 이어 평안북도의 양덕(陽德)·맹산(孟山), 희천(熙川)·강계(江界) 등지를 지나 압록강 초산에 도착할 때까지 곳곳에서 처절한 혈전을 겪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피용학은 1896년 7월 강계에서 적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체포되어 사형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司法稟報(奎章閣 所藏) 第1卷 389∼391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