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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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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한자 金明道
이명 없음 성별 남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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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2000 훈격 애족장
1896. 7월 유인석(柳麟錫)의병장이 이끄는 호좌의진(湖左義陣)에 소속되어 포군(砲軍)으로 활동하다가 호좌의진(湖左義陣)이 만주 서북지역으로 근거지를 이동할 목적으로 평북(平北) 양덕(陽德), 맹산(孟山), 희천(熙川) 등지를 경유하여 강계부(江界府)에 이르렀을 때 관군(官軍)에 체포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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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1896년 유인석(柳麟錫) 의병장이 이끄는 제천의진(堤川義陣)에 소속되어 포군(砲軍)으로 활동하였다.

1895년 11월(음력) 안승우(安承禹)·이춘영(李春永) 등은 토적복수(討賊復讐)를 기치로 강원도 원주에서 거의한 후 유인석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제천에서 진용을 재편성하였다. 김명도는 이때 의진에 참여하여 포군으로 활동하였다.

이렇게 하여 결성된 제천의진은 제천을 중심으로 충청·경상·강원도의 3도가 접경하는 충주·단양·원주·영월·안동·문경을 연결하는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유인석의 의병부대는 별동대까지 합하면 10,000여 명에 달하는 대부대를 구성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대규모의 의진을 형성하게 됨에 따라, 실제 전투는 각 부장들이 지휘하는 예하 단위부대에서 전개되는 경우가 많았다.

제천의진은 1896년 2월 중부지방의 요충지인 충주성을 점령하며 기세를 떨쳤고 '격고내외백관(檄告內外百官)'이란 격문을 관리들에게 보내어 각성을 촉구하였다. 또한 수안보와 가흥(佳興)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적군의 재공격으로 의진은 충주성에서 후퇴하였고 곳곳에서 전투를 전개하며 평안도를 거쳐 중국 요동으로 건너가 장기항전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제천의진은 단양에서 진영을 정비한 뒤 원주를 거쳐 영월·평창·정선을 경유하여 평안도 방면으로 북상하였다. 이어 평안북도의 양덕(陽德)·맹산(孟山)·희천(熙川)·강계(江界) 등지를 지나 압록강 초산에 도착할 때까지 곳곳에서 처절한 혈전을 겪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김명도는 1896년 7월 강계에서 적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체포되어 사형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司法稟報(奎章閣 所藏) 第1卷 389∼391面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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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명도 - - 전기의병(호좌의진)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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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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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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