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1919년 황해도 재령(載寧)에서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순국하였다.
재령군의 만세시위는 먼저 군의 북쪽 지역인 남률면(南栗面) 해창리(海昌里)에서 시작되어 이웃인 북률면(北栗面) 내종리(內宗里) 등지로 번지면서 격렬해졌다.
남률면 해창리에서는 3월 6일 밤 만세시위운동이 일어나 온 마을이 만세의 함성으로 진동하였다. 시위군중은 일시 헌병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점령하기까지 하며 독립 경축의 기분을 만끽하였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북률면 내종리에서는 기독교 목사 윤문옥(尹文玉) 등이 중심이 되어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준비를 갖추었다.
3월 10일은 내종 장날로서 아침부터 많은 신도 및 애국 동포들이 약속대로 숭의학교(崇義學校)에 집결하였다. 애국 청년 최희준(崔喜俊)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운동에 관한 연설을 하자 군중들은 태극기를 손에 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에 돌입하였다. 여기에 장꾼들이 가담하고 숭의학교 생도들도 참가하여 시위대는 순식간에 1,000여 명을 넘었다.
미리부터 경계하고 있던 헌병 보조원들이 제지하고 나섰다. 격분한 시위대가 헌병 주재소로 몰려가자 적 헌병대는 시위대에 총격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일경 중에도 부상자가 생겼다. 결국 헌병대의 무자비한 총격으로 시위 대열은 무너지고 군중들은 해산하였다.
신제원은 이와 같은 북률면 내종리의 만세시위운동에 참가하여 활동하다가 일경의 총격으로 부상을 입고 제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순국하고 말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獨立運動史略(金秉祚, 1920) 上篇 46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