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1919년 3월 10일 평남 맹산(孟山)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순국하였다.
맹산에 독립선언서를 전달한 사람은 당시 덕천(德川) 천도교구의 공선원(共宣員)인 현성재(玄聖才)이었고 이 지역 천도교구장인 문병로(文炳魯)를 비롯하여 길응철(吉應哲) 등 천도교 간부들이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처음 맹산군의 3ㆍ1운동은 1919년 3월 6일 전개되었다. 이날 천도교인 50여 명이 가두로 진출하여 독립선언서를 살포하며 독립만세를 부르자 이에 일반 시민과 기독교인들도 합세하여 수백 명의 군중이 시위를 벌였는데 헌병이 출동하여 강제 해산당하였다.
그러나 이날부터 군내 각지에서 만세시위운동이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그러다가 3월 10일 일경이 시위운동의 주모자를 체포하여 혹독한 고문을 가하자 이에 격분한 군중이 헌병분견소로 몰려가 주모자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분견소에서는 군중들을 불러 뜰안에 들어오게 한 다음 문을 잠그고 총기를 난사하여 그 자리에서 50여 명이 사망하였으며 숨이 끊어지지 않은 사람들은 창으로 마구 찔러 숨지게 했다.
박내준도 이 당시 항의 대열에 참가하였다가 일헌병의 만행으로 피살 순국하였다.
이후에도 맹산의 군중들은 굴하지 않고 연일 시위운동을 계속하였고 밤에는 산에 올라 횃불을 들고 만세를 고창하였다. 이 지역의 시위운동으로 무려 253명의 순국자와 25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고 하니 시위의 격렬성과 일제 탄압의 무자비성을 짐작할 수 있겠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431面
- 韓國獨立運動史略(金秉祚, 1920) 上篇 41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