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1919년 3월 7일 평북(平北) 철산군(鐵山郡)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순국하였다.
이곳의 만세운동은 3월 5일 오후 1시 경의선 철도 차련관(車輦館)에서 시작되었는데,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3천명 이상의 주민들이 참여하였다. 그러나 일본 헌병대의 강제해산과 발포로 인해 많은 사람의 부상자와 피검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이들은 천도교인들과 다시 연락을 하여 3월 7일 철산읍내에서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날의 만세운동은 명흥학교 교장 심치규(沈致珪)·교직원인 안태영(安泰英), 기독교인 김영락(金永洛)·심치경(沈致璟)·안봉국(安奉國)·유봉영(劉鳳榮)과 천도교인 정구석(鄭久錫) 외 1명, 그리고 일반주민대표인 김정찬(金鼎贊)·정익(鄭翊)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만세운동은 교회의 종소리를 시점으로 이루어졌는데, 많은 군중들이 거리에 나와 독립만세를 부르며 일본인들과 투석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를 저지하기 위한 일본 헌병들의 발포로 많은 사람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하였다. 당시 과부의 외아들이자 13세의 소년이었던 안정명도 시위대에 참여하여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일본 헌병이 쏜 총탄에 맞아 모친의 품에서 '이승에서도 독립의 의지를 다할 것'을 다짐하며 절명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獨立運動史略(金秉祚, 1920) 上篇 40面
- 韓國獨立運動之血史(朴殷植, 1920) 下篇 71面

